20세기 소년이후 또 한 번의 실망
재미없었던 영화 진격의 거인, 그리고 촬영장소에 대한 흥미
얼마전 근처 쇼핑몰에 갔을때 일입니다.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실내 놀이터에 딸 아이를 풀어(?)놓고 좀 앉아 있으려는 심산이었습니다.
좀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없을까..하고 주변을 둘러 보던 와중에 눈에 들어 온 것은 삼삼오오 모여 만화책을 읽는 일본 아저씨 무리들.. 그 사이에 한국 아저씨인 저도 끼어 만화책을 한 권 집었습니다.
(동행한 어른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이 부대되어 있는 실내 놀이터였습니다.)
몇 년만일까요.. 이런 마음에 여유..
정말 오랜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만화책을 읽었습니다.
제가 있은 만화책은 “진격의 거인(進撃の巨人)”이라는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 만화입니다.. 워낙 알려 질만큼 알려 진 만화라서 부연설명은 안 하겠습니다.
그렇게 2시간동안 진격의 거인 5권을 읽은 저는 오랜만에 느끼는 여운이 못내 아쉬웠는지, 집으로 오자마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실사영화화 되었다는 “진격의 거인”을 보고 말았습니다.
뭐야 너무 재미없잖아…
너무 기대가 컸던 탓일까요?
영화 “진격의 거인”을 보면서 그리고 보고난 후에 느끼는 제 감상은 “뭐야 너무 재미없잖아” 였습니다.
원래 잘 만든 영화라는게 도입부의 산만함이 어느 선에선가 하나씩 정리가 되어가며 보는 이로 하여금 집중력과 후반 전개의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재주가 남다릅니다.
하지만, 진격의 거인은 산만함은 그대로 남아 있고, 보는 이로 하여금 실소를 자아내게 하며 참을성을 증폭시키는 재주가 남달랐습니다.
이런 실망감은 비단 저만의 것인가요?
나이를 먹으니 느는 것은 불만과 잔소리, 쉬이 만족하지 못 하고 꼬투리를 잡으려는 아재의 나쁜 습성뿐인가..하면서 영화에 대한 실망은 저에 대한 반성과 자책으로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 보았습니다. “映画 進撃の巨人 評判(영화 진격의 거인 평판)” 라는 검색어로 말이죠.
저는 나쁜 습성의 아재는 아니었습니다.
많은 일본인들이 “진격의 거인”에 대한 악평을 늘어 놓고 있었습니다.
일부 열광적으로 만화 “진격의 거인”을 숭배한 팬들은 “원작을 더럽힌 죄 용서를 하지 않으리라!”며 분노하는 글귀도 눈에 띄었습니다.
열광적인 숭배자가 아니더라도, 소위 “특수효과 짱짱한 일본영화”를 기대한 일부 팬들은 “쓰레기 영화”라는 평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영화가 이렇게 졸작취급을 받는 이유를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 만화에서 묘사된 입체기동씬에 전혀 박력을 느끼지 못 하겠다.
- 거인이 쓰러질 정도의 공격의 전혀 매서움을 찾아 볼 수 없었다.
- 거인이 아저씨 아줌마로 밖에 안 보임
- 에렌과 미카사의 캐릭터설정과 캐스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 불필요한 러브씬
가장 많이 사람들을 실망시킨 “박력없는 입체기동씬”과 “전혀 매서움이 없는 공격씬”에 대해서, 거인과 성벽을 비롯한 건물, 그리고 인간들의 거리감이 제각각이며 특히 건물에 대한 묘사가 너무 흐릿하여, 마치 3D슈팅게임으로 연상시킨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았습니다.
영상으로 보는 진격의 거인
2015년 진격의 거인이 개봉할 즈음, 비슷한 시기에 매드맥스가 개봉되어 많은 사람들이 양자를 비교하며 “일본영화의 한계”를 한탄했다고 하는데요, 이에 진격의 거인 제작에 참여했던 스텝이 SNS에 “그렇게 비난을 할 거라면 헐리우드 영화만 보라”고 글을 올려 또 한 번 비난의 화살을 맞아야 했다고 합니다.
아울러 진격의 거인의 팬들 사이에선 “웰메이드 에니메이션”으로 추앙받는 에니메이션판과도 비교를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고 합니다.
진격의 거인 에니메이션판
바로 진격의 거인의 촬영장소인데요, 우리에게도 널리 익숙한 영화 “군함도”의 배경이 된 군함도(軍艦島)라고 합니다.
강제징용의 아픈 역사를 그린 우리영화 군함도는 아시다시피 실제로는 군함도 근처도 안 가 본 영화이죠.
그에 반해 진격의 거인의 촬영장소는 진짜 군함도라고 합니다.
원작의 독특한 세계관을 재현하기 위해 제작진이 여러 장소를 물색끝에 낙점되었다고 합니다.
군함도라는 영화를 본 후, 군함도라는 이름만 들어도 마음 한 구석이 미어지는 느낌을 받았던 저에게 진격의 거인 촬영장소가 군함도였다는 점은 묘한 끌림이 있었습니다.
영상으로 보는 군함도
생각해보면, 실망은 처음이 아닌 듯 합니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만화가 선생님이 있습니다.
우라사와 나오키(浦沢 直樹)님 입니다.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 “몬스터”,”마이클 키튼”등을 작화하신 분이시며, 그 분의 작품 “20세기 소년(20世紀 少年)”은 제 인생만화이기도 합니다.
이 만화 역시 일본에서 실사 영화화 된다는 보도를 접한 뒤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당연히, 개봉첫날 저는 부푼 가슴을 안고 영화관에서 상영을 기다렸죠..
2시간정도의 영화가 끝났을 무렵 밀려오는 허탈함과 실망을 안고 극장을 나왔지만 말이죠.
워낙 출중한 만화와 에니메이션을 “마구” 만들어 대는 일본에는 이를 실사화할 수 있는 재능은 좀처럼 없나 봅니다.
원작이 너무 잘 만들어서 그런 걸까요..?
“변태가면”이나 “바람의 검심”처럼 원작을 뛰어 넘었다는 평가를 받는 영화도 물론 있지만요..
(원작을 뛰어 넘은 실사영화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올리겠습니다)
최근 “너의 이름은(君の名は)”가 헐리우드에서 실사화 될 거라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헐리우드는 좀 다를까? 하는 기대를 부풀리면서 글을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미련 많은 작자의 오지랖 부연설명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 “진격의 거인”에 대해서 몇가지 덧 붙이겠습니다.
2015년 8월에 개봉한 진격의 거인(전편)은 원작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서 그런지 총 흥행수입 32억엔의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애초 영화계에서는 당시 최고의 기대작이었던 “쥬라식 월드(흥행수입 95억엔)”의 대항마로서 최소 50억엔의 성적은 거둘거라고 예상되었습니다.
허나, 영화에 대한 실망과 악평이 이어지면서 기대에 못 미친 성적을 거두고 말았죠.
2016년 개봉한 후편은 더 비참한 성적인 17억엔으로, 반전의 실마리는 커녕 “실망할 것을 각오하고 왔는데, 그 이상이었다”라는 평가와 함께 영화팬들의 외면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