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기고작가

일본여행 오셨어요?
3・1일절에 올리려고 했던 글인데, 늦었네요.

#일본여행 역사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현수막이 축구장에 걸린 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한일전이있고, 장소는 서울의 상암이었습니다.
역사를 왜곡하는 사람들과 역사를 잊어가는 사람 모두에게 일침을 가하는 글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볍게 도쿄로 여행을 떠나는 분들에게 도쿄에 살아 숨쉬는 잊혀지고 있는 역사의 현장을 소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BS다큐멘터리 [광복70년 특별기획] 도쿄에는 특별한 곳이 있다.』를 바탕으로 이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잊지 말아야할 도쿄의 한국 역사 그리고 상처의 흔적

한국 관광공사에 따르면 2017년 일본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 수는 무려 714만명에 달했다.
이는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약 15%에 달하는 수로 대구광역시+대전광역시+광주광역시+울산광역시+제주시+서귀포시의 인구를 합한 것과 비슷하다.그 중 도쿄를 찾은 관광객은 대략 164만명으로 대전광역시 인구보다 10만명 가량 많은 수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는 도쿄, 이 곳엔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할 역사가 숨어있다.

역사를 만나는 첫번째 일본여행 ..아직도 들려오는 대한독립만세의 함성, 히비야공원

히비야 공원은 긴자와 신주쿠를 연결하는 큰 공원으로 크기가 무려 16만평이나 되어 도쿄의 허파라 불린다. 12월 크리스마스엔 마켓을 열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명소이기도 하다. 이 곳은 과연 우리의 어떤 역사와 관련이 있을까?

일본 역사문제

(사진출처/히비야공원(tokyo-park.or.jp))

1919년 1월, 동경조선유학생학우회는 동경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웅변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독립을 위한 구체적인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결의하고, 실행위원으로 최팔용·김도연·백관수 등 10명을 선출하였다.

이 후 2월 8일 조선 재일 유학생 600여 명 앞에서 2·8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이들은 거리로 나와 독립 만세 운동을 하였고, 그 장소가 바로 히비야 공원이다.
2월 8일 일어난 2.8독립 운동은 곧 3.1운동으로 번지게 되었으며 독립운동의 뜨거운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또한 히비야 공원은 안중근 의사의 총에 의해 죽은, 을사늑약의 원흉 이토히로부미 장례식이 치뤄진 곳이기도 하다.

히비야공원(日比谷公園)
치요다구 히비야공원(〒100-0012 東京都千代田区日比谷公園)
24시간개방
도쿄메트로 마루노우치센 카스마가세키역(東京メトロ丸ノ内線・霞ヶ関)나와서 바로
Google MAP
히비야공원 공식사이트(일본어)
트립어드바이즈 평가
좋음
80%
보통
18%
별로
2%
日比谷公園

역사를 만나는 두번째 일본여행..관동대지진의 상흔, 니주바시

히비야 공원에서 도보로 5분, 일왕이 살고 있는 황거가 있다. 황거(皇居:황족이 사는 거주지) 안쪽엔 니주바시라는 다리 하나가 있다.
이 곳에서도 독립 운동이 벌어졌었다.

일본 역사문제

(사진출처/JAPAN THIS(japanthis.com))

우선 니주바시 다리는 일왕이 국민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던 곳으로 국민들을 전쟁터로 향하도록 격려하던 장소이다.
이 곳에서 의열단원인 김지섭은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이 학살된 것에 분개하여 황거의 입구인 니주바시에 폭탄 3개를 던지고 일본군에 체포되었다.

비록 폭탄의 위력은 크지 않아 실패로 돌아갔지만 도쿄의 심장인 황거에 폭탄을 던졌다는 그 사실 자체가 당시 어마어마한 파장이 되었다.
황거 관람이 끝난 후 나오면 사쿠라다몬이란 문을 지난다. 이 문 앞 공터에도 엄청난 역사가 숨어있다.

황거(皇居)
치요다구 치요다1-1(〒100-8111 東京都千代田区千代田1−1)
09:00 – 17:00(매주 월,금요일은 휴무)
치요다센 니주바시마에(千代田線二重橋前駅)6번 출구나와 도보15분
Google MAP
궁내청 공식사이트(일본어)
트립어드바이즈 평가
좋음
66%
보통
25%
별로
9%
皇居

영상으로 보는 황거

역사를 만나는 세번째 일본여행..격렬항쟁에 불을 지핀 그 곳,사쿠라다몬

1932년 1월8일, 일왕은 요요기 연병장에서 신년맞이 열병식에 참석 한 후 황거로 돌아왔다.
황거로 들어가기 위해 사쿠라다몬으로 향했고 그 순간 엄청난 폭음과 함께 수류탄이 터졌다.
(사쿠라다몬은 황거에 있는 여러 문중 하나이다.)

일본 역사문제

수류탄을 던진 이는 한인애국단 소속 32세 이봉창 의사다.
사쿠라다몬 바로 앞은 도쿄경시청(우리나라 경찰청)으로 그 앞은 당시 경비가 가장 삼엄한 곳이었다.
비롯 일왕 제거엔 실패했지만, 동경 중심에서 일왕을 향해 폭탄이 터졌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한 중 일 사람들에게 커다란 사건이 되었다.

역사를 만나는 네번째 일본여행..너무도 귀에 익은 그 곳, 야스쿠니신사

“도쿄의 역사”하면 떠오르는 곳 중 한 곳이 바로 야스쿠니 신사다.
야스쿠니란 나라를 편안하게 한다는 뜻이다. 나라를 편안히 한다는 뜻과는 다르게 왜 항상 야스쿠니 신사는 떠들썩한 것일까?

일본 역사문제

우선 일본의 “신사”란 태평양전쟁 패전 이전까지 일본이 국교로 내세운 신도(神道)의 사당으로 신도 신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 ‘신사’다.
‘신도(神道)’는 일본의 고유 민족신앙으로, 선조나 자연을 숭배하는 토착 신앙이다. 종교라기 보단 민족적 관습에 가깝다.

“신도” 워드관련기사
일본의 신사(神社)-도심에서 느끼는 일본의 전통미 그리고 에티켓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내 8만여개의 신사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야스쿠니 신사는 크게 246만명의 전사자 위패가 있는 곳과 전쟁기념관으로 나뉘어 있다. 전사자 위패는 일본이 벌인 전쟁에서 숨진 246만여 명을 신격화 하고,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들의 위패가 보관되어 있어 군국주의를 조장한다. 이런 활동들은 전쟁을 반성하지 않는 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 입구엔 커다란 안내문이 있다.
그 곳엔 제 2차 세계대전이라는 말 대신 대동아 전쟁이라는 말이 적혀 있다. 대동아 전쟁이란 일본이 전범국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양의 압박에 맞서 일본이 아시아 민중을 해방 시켜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벌인 성스러운 전쟁”을 말할 때 사용한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일본의 국가 가치관을 잘 보여주는 예시다.

야스쿠니신사(靖国神社)
치요다구 구단시타3-1-1(〒102-8246 東京都千代田区九段北3丁目1−1)
토에이 신주쿠선 구단시타역(都営新宿線 九段下駅) 내려 도보5분
Google MAP
야스쿠니신사 공식사이트(일본어)

역사를 만나는 다섯번째 일본여행..전쟁기념관에서 만날 수 있는 그 분의 이야기

신사 본당 옆에 위치한 전쟁기념관(유슈칸) 또한 한국인이라면 꼭 가봐야 할 장소다. 전쟁기념관 입구엔 세계대전 당시 쓰였던 무기들이 당당히 서있다.
곳 곳에 전범기가 보이며 마치 이들에겐 자랑인 듯 진열되어 있다.


(사진출처/야스쿠니신사(yasukuni.or.jp))

전시 내용물 중 피가 묻은 흰 와이셔츠 한 벌이 있다. 이 옷은 당시 상하이 일본군 사령관 이었던 시라가와 대장의 옷이다.
설명문에는 “조선독립당에 속해있는 자가 폭탄을 던졌다.”라고 나와있다. 그 분이 바로 윤봉길 의사이시다.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 홍커우 공원, 일본의 중국 상하이 침략을 기념하는 무대가 열렸고 그 곳에 많은 고위급 일본군이 모였고, 이봉창 의사의 희생에 감명받은 25세 청년 윤봉길 의사께서는 망설임 없이 폭탄을 던지셨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 때 시라가와 대장 역시 사망하였다.

우리나라는 윤봉길 의사를 구국의 영웅으로 칭송하였지만 일본은 그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자를 전쟁기념관에 전시하며 신격화 하고 있다.
역사를 바라보는 두가지 시선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역사를 만나는 여섯번째 일본여행..아직 흘러 내리지 못한 아픔이 서려있다. 아라카와 강변

도쿄의 전통을 느껴볼 수 있는 아사쿠사와 도쿄의 번영을 상징하는 스카이트리.
이 두 곳은 도쿄의 빠질 수 없는 관광 코스다. 하지만 이 곳에 오면 반드시 다녀와야 할 곳이 있다.

아라카와강

아라카와강

(사진출처/photozou.jp)

아사쿠사와 스카이트리 사이에 위치한 아라카와 강변. 이 곳은 약 90년 전 잔혹한 역사가 만들어진 곳이다.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이 일어나 약 14만명이 죽었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을 벗어나려 일본 정부는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타고 마을에 불을 지른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으며 그로 인하여 경찰, 군인, 민간인 할 것 없이 모두들 조선인 사냥에 나섰다. 일본인들은 조선인에게 일본어를 시켜보고 발음이 어눌할 시 단칼에 베어버렸다.

당시 약 6천여명의 조선인들이 이 곳 아라카와 강변에서 희생당했다. 주로 죽창과 칼에 찔려 죽었으며, 희생된 시체는 모두 불에 태워졌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를 부인하고 있으며 정부가 주도한 것이 아닌 일부 시민들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 발뺌하고 있다.

일본여행 그리고 역사

일본여행 그리고 역사

하지만 몇몇 양심적인 일본 시민들 덕분에 강변 옆에 조그마한 추모비가 세워졌다. 이들은 매년 관동대학살의 진상규명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으며 아라카와 강변에서 추모제와 음악회를 열어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운동을 하고 있다.

이렇게 나쁜 일본, 여행해도 되나요?

“일본 여행을 옳다, 옳지 않다”는 식으로 섣불리 결론 내릴 수는 없다.
국제관계학을 전공한 내가 현실주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한일관계와 대한민국 국민의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한일관계는 다르기 때문이다.
현실주의적 관점으로만 일본을 바라보기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아픈 역사가 남아 있고, 민족주의적 관점에서만 일본을 바라보기엔 현실적 이해도가 떨어진다.

그래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고 본다.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고 여행하면 된다. 누구도 타인에게 여행이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한다고 결정해줄 수 없다. 스스로 뚜렷한 가치와 의미를 부여한다면 옳지 않은 여행이란 없다.

다만, 놀고 즐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쯤은 위에서 언급한 곳도 방문 해보고,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
그리고 돌아가서도 한일 역사 문제에 꾸준한 관심을 보이는 것이 개인적으로 좋은 자세가 아닐까 생각한다.